운명을 가리키는 대본, 운명을 바꾸는 연기

운명을 가리키는 대본, 운명을 바꾸는 연기
운명을 가리키는 대본,  운명을 바꾸는 연기
스킨
스토리잠긴 대기실의 문을 열고 대본을 두고 갈 수 있는 쿠키. 그건 그림자 속 극작가일 수밖에 없었다. 써 내려가는 극마다 흥행을 거듭하며, 마음에 든 배우에게만 대본을 두고 간다는 극장가의 전설적인 존재. 그게 전부였다면 이토록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대본의 내용에 있었다. 화려한 필기체로 쓰인 대사는 배우만이 알고 있는 치부를 날날이 파헤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과거를 들추는 데 그치지 않고 배우의 미래까지 가리키려 했다 배우는 대본을 훑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대사와 지문에 감탄하는 자신에게 모순을 느끼며. 줄거리는 간결했다.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들은 주인공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다시금 예언은 새로운 왕이 파멸에 이르리라는 결말을 가리키는데.. 거기까가지 읽어 나간 배우는 신경질적으로 대본을 던졌다. 그러나 대본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대신 공중으로 떠올랐다 '관객들 앞과는 전혀 다른 매너인걸~?" 처음 듣는 목소리임에도 본능적으로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림자처럼 넓게 펼쳐져 일렁이는 망토, 원고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반쯤 내리깐 눈.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어 내리는 깃펜까지... 지금까지 배우에게 대본을 보내온 극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극작가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배우에게 다가갔다. 그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말과 함께 "어쩔 수 없으려나~? 관객 앞에서만 완벽한 너의 가면 역시 나, 이터널슈가 쿠키가 부여한 배역이니까!" 쉐도우밀크 쿠키는 애써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극 위에서는 대본에 쓰인 배역으로 살아가는 배우일지라도, 무대 밖에서는 평범한 쿠키랍니다?" 극작가는 나지막이 웃었다. "아직 넌 무대 위에 서 있는 걸~?" 배우는 불안을 꿰뚫린 불쾌함을 최대한 숨기려 했다. "어떤 배우는 극을 삶으로 비유하며 배역과 자신을 일치시키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커튼콜이 끝나는 순간, 배역과 저는 분리되죠." 배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 이터널슈가 쿠키의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후후후! 아니지, 아니야... 커튼콜은 극중극을 닫을 장치였을 뿐! " 이제는 극작가의 망토 속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밀려오는 두통에 배우는 저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극작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너는 똑똑하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완벽한 배우라는 명성은 네가 쓰고 있는 가면일 뿐! 사실은 네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쓴 대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야~?"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듯 배우의 과거가 여러 화각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극장가에 발을 들이려 손을 더럽혔던 날들 서로를 밟고 일어서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기적처럼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 데뷔. 그 뒤로는 망설일 시간도 주지 않고 밀려들던 대본들과 캐스팅 제안들.. 그 모든 것이 그림자 속 극작가가 써 내려간 대본에 불과하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돈? 친밀한 관계? 이런 방법으로 얻어내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쉐도우밀크 쿠키의 말투가 변한 것을 눈치챈 극작가는 입꼬리를 올렸다. "전부 필요 없는데~?" 극작가는 대본을 넘겨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내가 바라는 건에 네가 행복해지는 거야!" 배우는 코웃음 쳤다.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대본을 보내놓고, 행복을 바란다고?" 조소에도 극작가는 말을 이어 나갔다. "대본에 없는 대사를 추가하길래, 평범한 희극으론 네 행복을 채워주지 못하나 싶어서 말이야~" 쉐도우밀크 쿠키로서는 더 이상 극작가가 마음대로 말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배우의 시선에서 극을 더 세련되게 바꾸었을 뿐이야.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내 연기를 증명해 주었잖아? 관객도, 함께 극에 오르는 배우들도 연기로 압도시켜 버리면 그만이니까." 한순간 깃펜이 멈추고, 이터널슈가 쿠키가 처음으로 쉐도우밀크 쿠키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터널슈가 쿠키는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려 표지를 어루만졌다 "이번 대본은 네 마음대로 고치지 못할 거야. 대사 하나가 바뀌는 순간, 모든 내용이 어그러지는 완벽한 대본이거든." 이터널슈가 쿠키는 대본을 다시 쉐도우밀크 쿠키의 손에 들려주었다. "애써 불가능에 부딪히지 말고 그냥 내가 주는 배역에 몰입해 보라구. 지루함을 없애줄 테니까, 응~?" 그리곤 그 어떤 대답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림자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다시 대기실에 혼자 남겨진 배우는 실소를 터뜨렸다. 불청객이 자신의 운명에 잉크 자국을 떨어뜨리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은 없었으니까. 반드시 결말은 바꾸어내리라. 그의 몸짓, 그의 연기 그리고 그의 대사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화려한 왕관과 풍성한 망토를 걸친 왕이 되어주지." 무대 위의 공기를 떠올리며 쉐도우밀크 쿠키는 낮게 읊조린다. "죽음의 예언도 깨트리면 그만~. 가장 마지막에 이기는 건, 박수갈채와 환호 속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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