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잘 자는구나.."
달빛 아래 어두운 밤.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달빛에 하얗게 일렁이는 달맞이 꽃밭 위에 한 여성이 쭈구린채 앉아있다. 그녀의 뒷모습은 한없이 아련하면서도 힘이 빠져보인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버티고 있던 그녀는 결국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일렁이는 꽃의 파도에 몸을 맞겼다.
그렇게 풀썩, 주저앉은 그녀는 그녀의 옷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흰 얼굴 위로 슬픈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냥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렇게 흐른 정적은 한동안 말없이 가련한 두 모자를 감싸안았다. 가만히 잠시 정적이라는 평온을 만끽하는 그들에게 저 멀리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저 멀리 지평선을 지난 곳에서 들려온것 같았지만 한 분명한 목소리였다.
"찾아라! 찾기 전까지는 후퇴는 없다!"
굳건하고도 왠지모르게 소름끼치는 목소리는 저 멀리 지평선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점 더, 점점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목소리가 희열과 광기에 젖어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너희 가족들을 떠올려! 그들이 위험한 '마녀'에게 노출되게 둘 것인가? 정녕 그럴것인가 말인가!"
광기에 흠뻑 젖은 그의 목소리에 우렁찬 대답이 따랐다.
"아닙니다! 꼭 '마녀'를 찾아 제거시키겠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정확히 마녀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녀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녀일까. 길고 큰 매부리코에 늙고 주름진, 그 못생긴 마녀말이란것인가.
그 우렁찬 목소리의 화살촉은 먼 거리를 구불구불 날아와 달빛 아래의 여자에게 꽂혔다.
그 형태 없는 화살촉을 느낀 것인지 여자의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가늘게 떨렸다. 떠는 여자 반해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큰소리에도 얌전하고 침착했다.
가늘게 떨던 여자는 차츰 진정을 했는지 다시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미소가 아이와 매우 닮아 있었다.
어쩐지 깨끗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에는 잔잔한 고뇌가 담겼다.
아, 결국은 이렇게.
그 고뇌의 답이 난 것인지, 그녀는 아프고도 미련없는 웃음을 내었다. 작게 소리내어 웃은 그녀는 빛나는 꽃밭 위에 살포시 아이를 내려놓았다.
망설임없는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그녀의 손 끝에서는 미안함, 그리고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아가야, 잠시 다녀올게. 너는 예전부터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니 괜찮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고서 여자는 은색 바다위에 놓인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짧고도 우아한 손놀림은, 아이가 알아챌세도 없이 아이를 공중에 띄웠다.
정말 마녀가 실존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되던 순간 마법인것인지 공중에 떠있던 아이의 형태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삼켜버린 듯한 아이는 그저 달빛에 비춰지는 윤곽만 옅게 빛날 뿐이었다.
은은히 빛나는 아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여자는 결심을 내린것인지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굳은 의지가 달빛에 비춰 하얗게 일렁였다.
그녀는 아이에게서 등을 돌린채로 소리를 향해 걸어가며 투명하고도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없는 사랑이 네게 닿기를 바랄 그뿐이다, 아가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