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계의 균열》
《반죽계의 균열》
EP.0 - 프롤로그: 반죽의 속삭임
하늘이 흔들렸다.
쿠키들의 세계는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아래엔 오래된 균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의 암흑 성채, 다크카카오 왕국.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다크카카오 쿠키는 성벽 위에 섰다. 바람에 휘날리는 망토 끝에서부터 무언가 검게 번져드는 듯한 기운이 감지됐다.
그의 눈빛이 어두운 구름을 꿰뚫는 순간, 누군가 조용히 다가왔다.
자허토르테맛 쿠키. 은밀한 칼날 같은 자태로 다가온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폐하… 들으셨습니까. 반죽의 속삭임을.”
다크카카오 쿠키는 묵묵히 대답했다.
“그건… 오래전 내가 감춰버린 것들이지.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자허토르테맛 쿠키의 눈동자에 잠시 스친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그 ‘기억’이 깨어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결심이 눈빛 속에 녹아 있었다.
“문이 열립니다, 폐하. 그리고 그 문 뒤엔… 태어나선 안 될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희미하게 진동하듯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반죽을 휘젓는 듯한 소리, 그리고 그 틈으로 스며드는 울음.
멀리, 남쪽 왕국.
화려하고 환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 홀리베리 왕국의 성에는 웃음과 노랫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앉은 홀리베리 쿠키는 오늘따라 술이 쓰게만 느껴졌다.
연회장의 황금잔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이리 시끄럽지..? 아니… 너무 조용한 건가..???”
그녀는 자신의 귓가에 맴도는 흐느낌을 듣고 있었다.
그 울음은 오래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자신이 한때 흘렸던 울음 같기도 했다.
곁에 서 있던 진달래맛 쿠키는 조용히 잔에 꽃잎 하나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저 소리… 태어나지 못한 쿠키의 목소리일지도 모르겠어요.”
홀리베리 쿠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우리가 마시는 이 축배, 애초에 잘못된 시간에서 시작된 걸까 진달래맛 쿠키? 마음이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아.”
서쪽 깊은 평원의 한가운데, 꽃잎이 끝없이 흩날리는 세인트릴리 왕국.
제단 위에서 은별 쿠키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얼굴. 그러나 그 속에선 파장이 일고 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감정이, 이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세인트릴리 쿠키는 조용히 손끝으로 덩굴을 소환해 제단 주위를 감쌌다. 그 덩굴은 경계하듯 제단을 감싸더니, 낯선 기운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꽃의 정령들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은별 쿠키, 그건… 반죽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기억의 파편이에요.”
은별 쿠키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형태를 가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태어나지 못한 존재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하늘 위에 평화롭게 떠있는 퓨어바닐라 왕국.
퓨어바닐라 쿠키는 오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이번 명상은 그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는 반죽계의 문을… 그 경계를 또렷하게 보았다.
어둠 속에 떠도는 흐릿한 형상들, 이름 없는 쿠키들, 완성되지 못한 감정들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넌… 우리를 기억해. 바닐라. 너는 늘 그랬어.”
퓨어바닐라 쿠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리고 나도 이제 그 기억에서 도망치지 않겠어.”
아득한 사막 위, 골드치즈 왕국 근처에 있는 고대의 사당 앞에서 골드치즈 쿠키는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리코타치즈맛 쿠키의 손끝에서 붉은 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실은 미래의 파편을 더듬듯이 허공으로 뻗어갔다.
“실이… 움직이고 있어요 골드치즈 쿠키님. 예언이 다시 시작돼요.”
골드치즈 쿠키는 묵묵히 실의 끝을 따라가다가, 사막 바깥 어딘가에 꽂힌 붉은 깃발 하나를 바라보았다.
“…누가 예언을 다시 깨웠는지… 곧 알게 되겠지. 어서 가보자구나 리코타치즈맛 쿠키.”
바람이, 전혀 다른 곳에서 울부짖었다.
그곳은 쿠키들이 알지 못하는, 태어나기 전의 시간.
반죽계.
지워진 이름들, 완성되지 못한 기억들, 감정조차 말라붙은 존재들이 서로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갖춘 세 개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직 이름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증오하고 있었다.
한 명은 단정한 눈빛으로 조용히 반죽을 뒤틀었고,
또 한 명은 독이 담긴 병을 조용히 돌리며 바닥을 녹이고 있었고,
마지막 한 명은 웃으며, 마치 연회에 온 듯 드레스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들 뒤로, 붉은 달이 떠올랐다.
“곧, 반죽은 반죽답지 않게 될 거야.”
“우리가, 직접 그것을 증명해주지.”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언가.
가장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존재가 속삭였다.
“기억을 감춘 자… 모두를 멸하게 된다.”
-다음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