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악-!"
짧은 비명이 울렸고, 그 애처로운 소리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비웃음이 스며있었다.
"이봐이봐, 조용히해- 여기선 아무도 네 소리를 못 들어-"
체, 못 듣긴 개뿔, 여기 멀쩡히 듣고 있는데.
이노는 어리석은 남자의 생각에 혀를 찼다.
현재 이노와 리오는 남자와 비명을 지른 여자가 있는 방에 있는 커다란 상자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방에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상자들이 놓여있었는데, 덕분에 두 아이는 몸을 숨길수 있었다. 그 상자들 중 작은 상자 두개 바로 옆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쓰러진채, 두려움 없는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어느 정도 관찰하면, 그녀의 몸이 안정적으로 유지 되어있는것을 발견할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부드러워보이는 금발 머리카락과 남색 셔츠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정장의 가슴팍에 금빛 뱃지가 달려있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인은 아니다.
"워, 원하는게 뭐야..!"
여자는 떨리지도 않는 목소리를 짜내듯이 말을 텄다.
두려워하는 모습도, 억지로 떠는 듯한 목소리도. 많은것이 부자연스러웠다. 그 사실을 깨닿자 이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치 일부러 무서운 척 연기하는 듯한-
그때, 옆에 있던 리오가 이노를 팔꿈치로 툭, 하고 쳤다. 그러고는 입모양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이야, 가자.'
"아니, 잠깐. 저 사람 조금-"
이노의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리오는 벌떡 일어나서는 여자 앞에 서 차갑게 웃고 있는 남자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당신, 당장 멈추지 못해?!"
리오의 당찬 목소리가 몇 미터의 거리를 뚫고 그 남자에게 닿았다.
바로 옆에서 리오의 목소리를 들은 이노의 얼굴에 어이없음의 조소가 차올랐다.
뭐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다 있단 말인가.
자신이 이런 애를 두고 줄곧 삐쳐있었다는것이 어이가 없었고, 몰래 잠입해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도 따르기는 커녕 선전포고를 해버리는 그녀가 어이가 없었다.
리오의 목소리에 돌아본 그 남자도 이노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기분나쁜 조소를 지어 보였다.
정면에서 마주한 그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8대 2로 정리가 되어있었는데, 전혀 깔끔해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가르마만 갈라두고 나머지는 여전히 자유분방했다.
또 다른 특이점으로는 그의 머리 색이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8대 2 가르마를 기준으로 흰색과 검은 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두가지 색의 머리카락은 정돈 되지 않은채 남자의 어깨까지 이어졌는데, 그 머리카락이 살짝 가린 그의 목에 눈에 띄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이런, 아가씨가 그 소문의 초능력자 인가-? 이거이거, 횡재했는걸-"
그 남자는 이젠 여자에게서 눈을 때고 리오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투는 거슬리게 늘어졌고, 규칙성 모를 리듬이 있었다.
여전히 앉아서 그 남자를 관찰하던 이노는 그에게서 무엇인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남자는 한 발을 들어 옆으로 찍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여전히 시선은 리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이 금발 아가씨만 처리하는 미션이었는데 말이야-?"
그는 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더니 다시 리오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기울인채 싱긋 웃었다.
이노는 그 웃음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 웃음이 주변을 잡아삼키듯이-
"그럼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순간 리오의 옆에 있던 상자가 굉음을 내며 터졌다.
그 굉음은 리오를 흐트려놓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겉으로 겁먹은 것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리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크게 뜨인 그녀의 눈이 겁먹은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앉아있어서 남자를 자세히 볼수있던 이노는 굉음이 있기 전, 그 남자가 손을 올려 총 모양을 만드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그는 여전히 바닥에 앉은채, 리오에게만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비장하게 깔렸다.
"손이야. 손을 보면 알수 있어."
이노의 말에 리오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네 초능력이 능숙해지면, 뭐랄까~ 공기랄까나? 아니면.. 공간! 공간이 맞겠네! 아무튼, 공간을 압축해서 무기처럼 쓸 수도 있다는데~"
순간, 하마르씨와의 대화가 번뜩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저 남자도 초능력을..!
리오의 생각은 곧 남자의 웃음기 묻은 목소리에 끊겼다.
"자자, 그럼 곱게- 이 이미스씨를 따라와 주실까-?"



